가난의 가난
2023-05-18
가난의 가난
나도 좋은 글을 쓸 때가 있었다. 요즘은 내 손을 거쳐가는 문장들이 그렇게 세련되지 않지만, 지난 날에 써내려간 글귀 중에는 지금 내가 초라해질 만큼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이 있다. 속에 피어오른 수치심을 숨기려는지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고독한 신사들이 입을 것만 같은 칙칙한 색의 코트를 꺼내 입는다. 세상이 알아채지 못하는 그림자의 한 편처럼 그 어두움에 묻어 길을 나선다.
칙칙한 신사의 옷에 걸맞는 딱딱한 구두를 신고 나왔다. 걸음을 편하게 하려면 운동화 따위를 신었겠지만 애초에 오늘이 낭만적인 감상을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을 나서니 차가워진 공기가 코를타고 한숨에 들어왔다. 계절의 향기라고는 모두 지워져서 냉랭함 밖에 남지 않은 겨울 공기였다. 지금 내 마음을 흔든 색바랜 문장도 이정도 추위와 함께한 듯 하다.
또각. 또각. 역시 칙칙함에 걸맞는 구두소리다. 분명 복장에는 힘이 있다. 보이는 모양새는 그 꼴이 잘 어우러지는 곳으로 주인을 데려다 놓기 마련이다. 한참 생각을 지우고 걷다보니 어느새 담배를 피러나온 철물점 주인 말고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철물점 주인의 타들어가는 담배가 보였다. 날숨엔 연기가 자욱하지만 들숨엔 빨갛게 타들어갔다. 익숙한 냄새였다. 어느정도 한국의 냄새였고, 어느정도 아버지의 냄새였다. 오늘은 유독 이 냄새가 밉지 않았다.
가난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래도 담배의 타들어가는 불꽃이 인상적이었다. 이 냄새가 채 지워지기 전에 가난을 나름 정리해보기로 했다. 내가 보기에 가난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말하자면 속세의 가난과 정신의 가난이다. 속세의 가난과 정신의 가난은 부득이하게 하나의 단어로 이어져있지만 둘은 정확히 다른 개별자로 존재한다. 단순히 연관없음을 넘어서 서로가 상반된 의미를 생산하는 수준으로 단어는 비약적이다.
대중이 두려워하는 속세의 가난은 어지러움이다. 그들은 세상의 온갖 불쾌한 인상들이 자신의 일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 도태되고 소외당하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면서
예술가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어지러움이 없는 평온함이다. 속세의 가난의 실종은 곧 정신의 가난을 낳는다. 세상의 불쾌함과 단절되고 자신의 정념이 깨끗하게 관리되기 시작하면 그 속은 평온해진다. 평온함. 이 평온함 위에서 예술가는 절대 어떤것도 만들수가 없는 것이다. 악당 없는 영웅이 없듯이 어지러움 없는 예술가는 없다. 창조하는 사람들은 어지러운 관념과 인상들을 필요로하고 응당 그것들로 자신의 담론들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니 예술가들이 두려워 하는 가난 이라는 것. 정신적 가난 이라는 것은 그들 창작의 재료가 되는 어지러움. 속세의 가난의 가난함 인 것이다.
좋은 글을 쓴 그때를 돌아보면 내 세상은 가난했다. 끓어 넘치는 욕망이 거절되기도 하고, 원치 않던 억압에 맞추어 살아가기도 했다. 깨끗하게 내뱉지 못한 그 인상들이 속에서 얽히고 뭉쳐서 하나의 글로. 하나의 담론으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속에는 그런 얽힘이 없다. 어지러움이 없다. 모든 것이 적당히 충족된 세상에서 글을 쓸만한 정념 따위는 다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